본문 바로가기

YKEDITION

SO RICH SO POOR

21세기 부자의 빈곤한 패션.


빛바랜 듯한 그레이 컬러의 패딩 점퍼, 파자마를 닮은 펑퍼짐한 스트라이프 팬츠, 투박한 운동화, 그리고 애써 손질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 헤어스타일까지. 이것은 오랜만에 꺼내 본 앨범 사진 속 아빠의 젊은 시절 모습이 아니다. 2017년 가을/겨울 발렌시아가가 선보인 룩 중 하나일 뿐. 그들은 이번 시즌 본래 어깨보다 한 뼘 정도는 더 넓은 오버사이즈 더블 브레스티드 재킷, 롱 코트와 역시나 여유로운 품의 팬츠, 후드 스웨트 셔츠 등 199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룩으로 컬렉션을 채웠다. 화룡점정은 짧은 스트랩이 달린 클러치 백. 2017년 컬렉션이지만 어린 시절 부모님의 모습이 오버랩되며 꽤나 묘한 기분이 든다. 이것은 단지 1990년대 패션이 트렌드의 궤도로 돌아온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1990년대 패션 아이템뿐만 아니라 아직 누군가의 옷장에 존재할 법한 평범한 아이템들이 하이엔드 브랜드의 신제품으로 출시되며 부유한 사람들의 쇼핑 리스트에 오른다는 뜻이다. 이제 부자들은 금, 은, 보석과 퍼, 가죽으로 부를 과시하던 과거와 달리 코튼 티셔츠, 저지 트랙 수트, 에코 퍼 등으로 치장한다. 화려하고 값비싼 아이템의 매치로 자신의 부를 과시하는 방식이 아니라 다소 평범한 아이템을 활용해 자기만족을 중시하는 스타일링! 부자들의 모습이 달라지고 있다.


THE RICH’S NEW FASHION
이런 현상은 일명 ‘유스 컬처’가 트렌드로 부상함에 따른 것이 아닐까 싶다. 2017년 봄/여름 컬렉션에 이어 이번 시즌에도 컬렉션의 시작부터 끝까지 작은 액세서리 하나에도 스트리트 무드가 녹아든 브랜드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대표적인 브랜드로 루이 비통, 발렌시아가, 랑방, 드리스 반 노튼 등을 꼽을 수 있다. 먼저 루이 비통은 이번 시즌 뉴욕 스트리트 문화의 상징인 슈프림과의 대담한 컬래버레이션으로 전 세계를 열광시켰다. 의류, 신발, 가방을 비롯해 지갑, 벨트, 모자 등 액세서리까지 루이 비통의 시그너처인 모노그램과 슈프림의 로고가 섞인 패턴이 프린트됐고, 슈프림의 상징인 레드 컬러가 곳곳에 물들었다. 루이 비통의 키폴 백과 트렁크에 루이 비통의 브랜드 네임 대신 슈프림의 로고를 새긴 것이다. 더구나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출시해 소장 욕구를 더욱 부추기며 패션 마니아와 리셀러들이 루이 비통 매장 앞에 장사진을 치게 만들었다. 로고 프린트 티셔츠는, 가죽 재킷은 6백만원대였으니 부자가 아니고는 손에 넣기 어려웠다.

Editor KIM YE JIN Photographed EDTION JALOU

2017년 YK 가을/겨울 호

<저작권자 © 로피시엘 옴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List

MUST REA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