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TYLE

VIRTUAL REALITY

가상이 현실이 된 패션의 패러다임.



패션계는 호흡이 매우 빠르다. 남이 시도하지 않은 새로운 것에 도전해야 환대받는다. 런웨이 컬렉션은 무려 1년을 앞서간다. 모델 이소라가 진행했던 프로그램의 단골 멘트처럼, 진보한 패션은 박수를 받지만 진부한 패션은 외면받는 것이다. 많은 브랜드가 시즌별로 컬렉션의 영감을 전달하기 위해 캠페인 이미지를 내세워 광고하고, 대중은 낯선 것에 대한 탐닉의 시선으로 그 광고 이미지를 즐겼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광고 사진이 동영상으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럭셔리 브랜드들이 너도나도 ‘패션 필름’이라는 이름으로 동영상을 제작해 상영했다. 정적인 한 장의 사진에 비해 동적인 느낌이 강하고 음향과 편집을 더하면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더욱 화려하게 전파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최근에는 패션계에 새로운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언어생활로 발달한 뇌 덕분에 인간이 문화와 예술 활동을 향유하듯이, 요즘 패션계는 사진과 동영상을 거쳐 새로운 차원과 조우를 시도 중인 것이다. 바로 가상현실(VR)이다.

지금 VR 기기의 등장으로 패션계가 술렁이고 있다. 눈과 귀를 가리고 막은 채 가짜 세계를 실제처럼 체험하게 해주는 VR 기기는 무궁무진한 응용력을 자랑한다. 이 기기를 잘 활용하면 단어 그대로 새로운 차원의 세계를 만들 수 있다. 사실 패션계에는 2000년대 초반부터 가상현실을 이용한 시도가 간간이 있었다. 센트럴 파크에서 홀로그램으로 컬렉션을 선보이거나 베이징에서 프로젝션을 사용한 이벤트를 펼치며 전 세계에 생중계하기도 했다.

최근 패션계에 등장한 가상현실은 더욱 사실적이다. 시계 브랜드 바쉐론 콘스탄틴은 스티브 맥커리와 함께 여행하며 찍은 사진으로 전시회를 열었는데, 무엇보다 사진 속 장소를 둘러볼 수 있는 VR 기기가 시선을 모았다. 이러한 기기는 사진 뒤쪽에 펼쳐진 풍경이나 하늘을 통해 당시 날씨를 보여주는 등 시간과 공간을 송두리째 바꿔버렸다. 영국의 헤리티지를 이어온 브랜드 버버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크리스토퍼 베일리는 혁신적인 기술을 이용해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명성에 걸맞게 그는 가장 적극적으로 그리고 영리하게 가상현실을 활용한다. 브랜드의 영감 보드를 하나의 실제 세계처럼 만들어 다른 사람이 체험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버버리의 영감 보드에서는 컬렉션 의상의 디자인에 영감을 준 조각상을 실제로 둘러보고 그 조각가의 작업실을 방문하고 주변 들판의 새소리를 듣고 컬렉션 의상을 입은 채 걸어 다니는 모델을 볼 수 있다. 발렌시아가는 뎀나 즈바살리아와 처음으로 함께 진행한 2016년 가을/겨울 컬렉션을 360도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로 공개했다. VR 기기를 사용하지 않고도 모바일이나 태블릿을 움직이며 현장을 느낄 수 있게 했다.

이렇듯 가상현실은 패션 세계에서 다양하게 활용되며 런웨이 쇼를 위협하고 있다. 굳이 쇼가 열리는 현장에 있지 않더라도 내가 쇼를 보는 곳이 곧 컬렉션 현장이 되는 것이다. 동시에, 컬렉션을 보는 즉시 구입할 수 있는 시스템은 패션계가 가상현실로 더욱 빠르게 진입하도록 자극하고 압박한다. 과거 패션 관계자만 쇼장을 관람하던 폐쇄적 시스템과 달리 지금은 쇼가 하나의 룩 북처럼 일반인에게 즉시 생중계되고 이는 바로 구매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미국의 정보 기술 연구 회사 가트너의 발표에 따르면 2017년까지 전 세계에 3억2000만 대 이상의 웨어러블 기기가 출시될 전망이다. 이렇게 첨단 테크놀로지가 생활 깊숙이 자리 잡으면서 패션 브랜드는 라이브 스트리밍과 더불어 가상현실을 적극 활용해 새로운 차원으로 진입하기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든 패션을 가까이할 수 있다는 점에서 VR 기기를 이용한 패션계의 노력은 매우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Editor KIM WON Photographed TOPIC IMAGES

2017년 2월호

<저작권자 © 로피시엘 옴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List

MUST REA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