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TYLE

FASHION LANGUAGE

긴 말은 필요치 않다.


자기표현의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여겨지는 패션을 통해 반항심을 표출하고 싶었던 어린 시절. 프렌치 커넥션의 로고 ‘FCUK’ 가 박힌 티셔츠를 입거나 디스퀘어드2의 선정적인 문구가 새겨진 아이템을 구매하기도 했다. 최근 패션 디자이너들은 정치적 격변과 사회 전반에 만연한 젊은 층의 불만, 사회 불안을 그들의 옷에 담아내는 데 여념이 없다. 패션계를 이끄는 파워 있는 디자이너들은 물론 다양한 셀럽과 밀레니얼 스타까지 자신의 의사를 표출하기 위해 문구가 새겨지거나 함축적인 의미가 담긴 일러스트 티셔츠를 입고 거리를 활보한다. 1960~1970년대 영국 런던에서 시작된 슬로건 패션은 캐서린 햄넷, 비비안 웨스트우드 등을 거치면서 자극적이고 도발적인 메시지를 담아내기 시작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정부와 기업의 비윤리적 행태를 담은 문서들을 폭로하는 해커 줄리안 어산지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컬렉션 전반에 걸쳐 ‘IoU’ 레터링의 옷을 많이 선보였는데 이는 우리는 모두 세계에 대한 빚을 지고 있다는 의미다. 평소 환경에 관심이 많은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철학과 줄리안 어산지에게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반영한 것이다.

바통은 다음 세대의 디자이너들에게 고스란히 넘겨졌다. 베트멍의 뎀나 즈바살리아는 2016년 가을/겨울 컬렉션에서 오버사이즈 후디에 ‘May the bridges I burn light the way(내가 불태우는 다리가 빛이 되리)’라는 문구를 새겨 넣었다.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겨준 파리 테러에 대한 분노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디올의 첫 여성 수장으로 임명된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당연하게도 주제를 ‘여성’으로 잡았고, 슬로건 티셔츠를 통해 페미니즘 메시지를 강력하고 분명하게 전달했다. ‘We should all be feminists(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 또는 여자들에게 던지는 혁명적 메시지인 ‘Dior(r) Evolution’을 새긴 티셔츠는 없어서 못 팔 지경이다. 

스타도 예외는 아니다. 레이디 가가는 미국 대선 기간에 도널드 트럼프를 반대하는 의미에서 마치 혈서처럼 보이는 ‘Love Trumps Hate’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기도 했다. 디지털 언어가 더 익숙한 밀레니얼 세대에게 직설적인 문구나 타이포그래피를 새긴 패션 아이템은인스타그램 피드에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도구다. 자신의 정치 성향뿐만 아니라 성적 취향까지 쿨하게 드러낼 수 있고 백 마디 말보다 전달력 또한 강력하다. 한 장에 수십만원짜리 티셔츠가 불티나게 팔려 나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디자이너의 메시지 혹은 나의 메시지를 담은 옷을 입고 정사각형의 사진을 통해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상업적으로도 큰 수익을 선사하는 슬로건 티셔츠에 대해 로고 티셔츠와 더불어 브랜드의 효자 아이템이라고 비꼬아 평가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옷에 박힌 글자가 지닌 힘을 무시하면 안 된다. 장황한 글보다 간결한 한 단어의 파급력이 더욱 강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Editor ROH HYUN JIN Photographed EDITION JALOU · assistant HONG JUN SEOK

2017년 5월호

<저작권자 © 로피시엘 옴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List

MUST READS